BANYUNING 궁전의 역사
오래 전 발리는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져 내려져 왔다. I Gusti Agung Banyuning 은 Mengwi 왕국의 첫 통치자인
I Gusti Agung Ngurah Made Agung (또는 Tjokorde Sakti Blambangan으로 불림)의 아들 중 한 명이었다.
17세기 경 Mengwi 왕국은 발리섬을 지배하는 황금기로 발리 남부, Buleleng, Jembrana, Blambangan
및 동부 자바(발리섬 왼쪽에 위치한 섬으로 서쪽 끝은 현재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함)까지 통치력을 갖고 있었다.
안정적인 통치를 위하여 국왕은 Kawiapura/Mengwi 에 자리를 잡고 일부 위성 궁전을 설립하고 아들이나 측근으로 통치하게 했다.
위성 궁전과 그 통치자들의 이름으로는 Payangan 궁전은 그의 셋째 아들에게, Muncan, Kapal 의 궁전은 차남
I Gusti Agung Ketut Buleleng, Kaba-Kaba 는 I Gusti Ngurah Teges, Buleleng 은 I Gusti Ngurah Panji Wayahan,
Jembrana 는 I Gusti Ngurah Jembrana, Sayan, Gianyar 는 아홉째 아들인 I Gusti Agung Banyuning 이 각각 통치를 했다.
1770년대 Mengwi 왕국의 다섯째 왕 I Gusti Agung Made Munggu(Tjokorde Ngurah Made Agung) 는 일부 지역을 이웃의
왕국으로 부여하게되며, Padang Luah, Gaji, Kuta 와 Jimbaran 지역은 Badung 왕국으로, Blahbatuh, Sayan,
Kedewatan 지역은 Gianyar 의 왕 Dewa Manggis 에게 부여했다.
역사가 변하면서 Puri Banyuning 의 첫 번째 통치자의 손자 I Gusti Agung Gede Banyuning 은 Abiansemal
지역의 Bongkasa 라는 마을로 왕국을 이전하여 Puri Banyuning Bongkasa 라 명하고 주변에 위성 궁전을 만들고
일부 지역에는 옛 왕국(Sayan – Ubud) 주변의 이름으로 명명하게 됩니다. 현재까지도 Sayan 과 Gianyar 주변에는
banjar Sayan, banjar Kedewatan, banjar Tanggayuda 이름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후18세기에 들어서면서 Mengwi 왕국은 점차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3세기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격게 된다.
1906년에는 네덜란드에 의해 발리 섬 전체가 식민 통치를 받게 되고 1930년대에 식민지 중재는 발리 남부 정치
체계의 유기적인 부분은 거의 사라지게 되며, 1945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태어나면서 새로운 정치 체계가 도입되었다.
Bongkasa 마을들은 Banyuning Bongkasa 궁전에 대하여 여전히 전통적인 지도자들의 저택으로 여기고 있다.
1997년 5월 18일에 있었던 왕가의 화장식 (Bongkasa 의 왕자, I Gusti Agung Gede Oka) 은 확실히 특별했다.
장례 예식은 발리 전체에 고인에 대한 사랑과 추도로 웅장하면서 감동적이었다.
I Gusti Agung Gede Oka 는 Puri Banyuning Bongkasa 통치자의 직계 후손으로 발리의 교육과 문화의 지도자였다.
그는 부인(Ida Ayu Kompiang Sutarti)과 Banyuning Bongkasa 궁전을 개조하였고,
남편이 고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개조하여 이후에는 일반인들에게 궁전을 공개하게 되었다